"한일병합 일본측 조서에 국왕 서명 확인"
한일병합이 국제법상 무효임을 보여주는 일본 국왕의 조서 원본 등 역사적 문건이 확인됐다고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가 밝혔습니다.
이태진 교수는 1910년 8월 29일 일본 국왕이 한일병합을 재가하고 공포하기 위해 작성한 조서를 보면 국새와 함께 국왕의 이름이 서명돼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반해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같은 날 반포한 문건을 보면 국새도 없고 이름 서명도 없다면서 일본 국왕의 문서 형식과 확연하게 다르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처럼 한일병합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조서 또는 칙유 문서 형식이 다른 것은 한일병합이 순종황제 승인을 거쳐 이뤄졌다는 일본측 주장을 뒤엎는 자료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한일병합 무효’ 입증 문서 첫 공개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본 도쿄(東京) 국립공문서관에서 입수해 11일 공개한 ‘일본측 한일병합 조서’의 원본사진(오른쪽)과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한국측 조서(칙유) 사진. 1910년 8월29일 일본 메이지(明治) 천황이 한일병합을 공포한 조서에는 국새(천황어새·天皇御璽)를 찍고 ‘무쓰히토(睦仁·메이지 천황의 본명)’라는 한자 이름이 서명돼 있는 반면, 같은 날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반포한 조서 원본에는 국새 대신 ‘칙명지보(勅命之寶)’라는 어새가 날인돼 있고 ‘이척(李拓)’이란 이름도 서명되지 않았다. 이 교수는 “‘일본측 한일병합 조서’의 원본사진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한일병합 조약이 국제법상으로 무효임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제공http://www.ytn.co.kr/_ln/0101_201008110827144868
'한일병합 불법' 증거 자료 더 있다!
서울대 규장각이 한일 병합 과정에서 일제의 불법성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이번 자료는 대한제국이 작성해야할 문서까지 일제의 통감부가 주도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병합조약이 무효라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습니다.
김정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꼭 100년 전인 1910년 8월 22일 작성된 한일합병 조약서입니다.
대한제국과 일본이 각각 작성한 2개의 조약서를 보면, 한글과 일본 글씨를 제외한 한문으로 된 글씨체가 모두 똑같습니다.
이완용에게 병합조약의 전권을 위임하는 위임장과, 병합조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양국 황제가 동시에 발표하자는 '각서'도 마찬가집니다.
같은 날 작성된 이 4개의 문서 모두 글씨체를 보면 한 사람이 작성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특히 '각서' 문서 가운데에는 통감부라는 세 글자가 선명해 모든 문서가 통감부 주도로 이뤄졌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인터뷰:윤대원, 서울대학교 규장각 HK연구교수]
"특히 3번째 각서에 통감부란 판심이 있는 것,이것으로 통감부 측에서 한 사람이 4가지 문서를 동시에 썼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죠."
또 병합조약 체결 당시까지 2년 여 동안 작성된 '각의 제출안 목록'에는 병합조약과 관련된 안건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
이완용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승인 조회비 408호' 등이 조약 체결 당일 날 급한 문서의 경우에만 사용하는 '지급'으로 다뤄진 점도 조약체결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뤄졌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윤대원, 서울대 규장각 HK 교수]
"승인절차를 밟도록 요구한 문서들이 병합조약과 관련해서는 전부다 '지급'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다른 문서와 달리 진행되고 있고 그것도 조약이 이뤄지는 바로 당일 몇시간 전에 문서가 이뤄졌다는 것이죠."
서울대 규장각은 대한제국의 국권침탈 과정 뿐 아니라 대한제국의 영토 정책에 대한 중요 유물들도 공개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이 각각 영토를 주장한 백두산 정계비 지도에서는 대한제국의 영토 수호에 대한 의지를 살펴볼 수 있고,간도주민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1900년대 초 간도 지역 주민들이 경작한 농경지 규모를 조사한 책 등은 당시 대한제국이 간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련 유물들은 10월말까지 일반에 공개됩니다.
http://www.ytn.co.kr/_ln/0106_201006251942059499
'병합 무효선언' 눈감은 일본 언론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 속에 한일 양국의 지식인들이 공동으로 한일 강제병합 조약은 원천 무효라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 언론이 이를 외면함으로써 양국 관계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도쿄 김상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한일 양국 지식인의 성명, 발표 장소는 달랐지만 내용은 같았습니다.
일본의 조선 지배에 대한 인식입니다.
도덕적으로도 부당하고 국제법적으로 무효라는 것입니다.
[녹취: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한국병합은 대한제국의 황제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시킨, 문자 그대로 제국주의 행위이며 불의부정한 행위였다."
[녹취: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병합 조약이 본래 부당·불의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당초부터 병합 조약이 null and void (원천 무효)입니다."
A4용지 3장 분량의 이 성명서는 전례가 없는 양국 지식인 선언인데다 양국 관계는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됩니다.
[녹취:아라이 신이치, 이바라키 대학 명예교수]
"(한일) 양국이 완전히 대립하는 견해와 해석을 유지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한일간) 역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 언론은 행사 당일 취재는 물론 지금까지 보도조차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물론 일본의 주류 역사학계가 인정하기 꺼려하는 사안인 점을 충분히 감안하더라고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고 기록해야하는 언론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특히 양국의 대표적 지식인이 상당수 참여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녹취:오다가와 고우, 아사히 신문 전 편집위원]
"이번이야말로 한일간의 커다란 간격을 메워 갈 필요가 있으며 그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외면은 일본 사회 전체의 공론의 장으로 부각시키는데 여전히 부담을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일본 언론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당사자로 가해자였으면서도 위안부나 강제 징용 등 자신들이 가한 비윤리적 인권 문제는 여전히 등한시하고 자신들의 피폭 문제 등 주로 피해자로서의 입장만을 집중 부각시켜 오고 있다는 점에서 반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일본 언론이 성명서를 제대로 읽어봤다면 한ㆍ일 두 나라의 과거사와 양국 간의 미래 관계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요소가 적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알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을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양국간 진정한 화해의 길은 멀어질 것입니다.
http://www.ytn.co.kr/_ln/0104_2010051119575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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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ellB












